EBS <정의란 무엇인가> 1부

(참고로 이 내용은 제가 네이버 블로그에 쓴 내용을 그대로 구글 블로그로 옮겨서 쓴 것입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10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2011년 초부터 1월 한달동안 EBS에서 샌델 교수의 명강의를 집에서도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보면서 몇 가지 내용을 메모해봤습니다. 

1명을 죽이고 5명을 살리는 게 낫다?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는 브레이크가 고장나 둘 중의 한 트랙을 지나가야하는데 한 트랙에는 1명의 사람이 서있고, 다른 한 편에는 5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는 1명을 죽임으로써 나머지 5명을 살리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을까요?
이에 대해 다수의 학생들은 1명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며 이미 9.11때 이러한 내용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비행기 안에 있는 상황을 얘기하는 것이 그에 해당하겠죠.
소수학생들은 이러한 의견이 전체주의를 합리화시킨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인종을 살리기 위해서 나머지 인종을 없애야 한다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든 후, 샌델 교수는 도덕적 원칙에 대해 두 가지를 구분하여 설명했습니다. 도덕적 원칙에는 결과론적 도덕추론과 정언적 도덕추론이 있습니다. 
결과론적 도덕추론은 '올바른 일, 즉 도덕적인 일인지 아닌지의 여부가 우리 행동이 야기할 결과에 따라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로 벤담이 주장한 공리주의가 결과론적 도덕추론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 주장은 다시 말하자면 결과에 따라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반해, 정언적 도덕추론은 결과에 상관없이 행동 그 자체에 본질적인 성격을 고려하는 것이 해당됩니다. 다섯 명을 살리더라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이 이에 해당될 수 있겠네요. 결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점이 정언적 도덕추론의 특징입니다. 칸트가 정언적 도덕추론에 해당되는 학자가 될 수 있겠네요.


칸트는 회의주의란 인간 이성의 쉼터라고 주장했습니다. 
칼리클레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대립관계였는데, 철학하지 말자는 회의주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아직도 진행된다는 건 비록 해결은 불가능하지만 이 문제를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과론적 → 공리주의(벤담) → 정당한 행동은 공리(utility)를 극대화합니다. 
공리는 고통을 상쇄하고 남은 쾌락, 즉 고통을 빼고 남은 행복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고통과 쾌락에 달려있습니다.

어느 난파선에 대한 내용.
브룩스와 더들리, 그리고 스티븐슨과 파커는 배를 타고 항해하다 어느 무인도에 갖히게 됩니다. 더들리와 스티븐슨은 가족을 부양해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파커는 고아이고 부양할 가족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다른 팀원들에게 미움을 샀다고 하네요. 남아있던 식량도 바닥이 났고 설상가상으로 병에 걸린 파커를 보며 나머지 선원들은 그를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어느 날 파커에게 다가가 누군가를 살인하기로 제비뽑기를 통해 할 예정인데 동참할 것인지 물어봅니다. 파커는 당연히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직감에 동의하지 않았죠. 하지만 그로 몇일 지나서 결국 파커는 죽임을 당하고 선원들은 그의 피와 살을 뜯어먹었습니다. 1명이 죽어서 남은 3명이 살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무죄일까요, 유죄일까요?
하버드 대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학생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파커가 제비뽑기에 동의를 했거나, 자신을 죽여도 좋다는 표현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이 경우, 상당히 많은 학생들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파커가 자신의 죽음을 동의했다면 무죄라고 판단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파커 자기 자신이 순교하겠다고 했을 때만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주장했죠. 일방적으로 파커를 죽인 것은 절차가 적절하지 못했고, 강압적이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옳지않았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다른 학생들은 파커가 설령 죽음에 대해 동의를 했더라도 유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가죽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살인은 살인이므로 나머지 선원들은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한다는 원칙론적 반대를 펼쳤습니다. 

이를 보면서 많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떠한 판단이 도덕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다음 2부에 이어서...)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칭따오와 함께하는 와인중국어